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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비 내리는 날 융건릉 산책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서울.경기

비 내리는 날 융건릉 산책

다보등 2023. 5. 30. 06:12

사월초파일 수원 용주사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도로도 조금씩 밀리긴 했으나 오래 걸리지 않아 융건릉 공영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고 주차도 수월하게 하였다. 용주사 주차장이 협소하여 오늘 같은 날을 당연히 주차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싶어 융건릉 앞에 주차를 한 것이다. 용주사까지는 걸어서 20여 분 정도 걸렸다. 우리 부부 말고도 이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종식 이후 처음인 부처님 오신날 행사는 당연히 붐비고 붐볐다.

비까지 와서 우산까지 시야를 막고(난리도 아니었다)

법당엔 들어가볼 엄두도 못 내고 언저리만 돌다가 지장전에 참배하였다.

 

 

경기도 화성 용주사는 조선시대 사찰이며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묻힌 융건릉 근처에 있다.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직접 세운 대표적인 왕실원찰이다.

 

 

용주사에서 나와 이왕에 융건릉에 주차를 하였으므로 융건릉을 들여다 보기로 하였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정조대왕과 사도세자를 참배하는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1735~1762)와 현경황후 홍씨(혜경궁 1735~1815)의 능이고,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1752~1800)와 효의황후 김씨(1753~1821)의 능이다.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무덤을 현 서울 동대문구에 조성하고 이름을 수은묘라 하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묘를 원으로 높여 영우원이라 하였고, 1789년(정조 13) 영우원을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원의 이름을 현릉원으로 바꾸었다. 1815년(순조 15) 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릉원에 합장되었고,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격상되었다.

 

건릉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현릉원(융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1821(순조 21)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를 치를 때 건릉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효의황후를 합장하였다.

 

 

사진 오른쪽 장조(사도세자) 융릉, 왼쪽 정조 건릉

 

입구에 들어서 먼저 융릉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숲으로 들어섰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숲 속에 들어오면 나무들이 주는아름다움에 놀라게 된다.

비가 오는 날이었으나 융건릉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료가 1,000원이다.(65세 이상 무료, 수원시민 50% 할인) 

 

 

융릉은 추존된 장조(사도세자)와 헌경황후(혜경궁 홍씨)의 능이다.

장조는 영조의 아들로 2세에 왕세자가 되었고 이후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기도 했다.

붕당정치의 갈등에 희생되어 1762년(영조 38)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장헌세자로 추존되고 무덤이 이곳으로 옮겨져 현릉원이 되었다.

1899년(광무 3)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었고, 능의 이름은 융릉이 되었다.

헌경황후는 1744년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남편 장조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혜경궁이 되었으며 이후 자서전 <한중록>을 집필하였다. 

1899년(광무 3) 헌경의 황후로 추존되었다.

* 추존 : 세상을 떠난 후 신분들을 높임

 

 

융릉홍살문
향로, 어로

'향로는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입니다. 오른쪽 어로로 걸으세요.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입니다. 이 길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융릉

 

융릉 비각에는 두 개의 표석이 있다.

하나는 현릉원 표석으로 1789년(정조 13) 양주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원의 이름을 현릉원으로 바꾸고 세운 표석이다.

또 하나 융릉 표석은 1899년(광무 3) 장헌세자를 장조의 황제로 추존한 후 이듬해에 현릉원 표석 옆에 새로 세운 표석이다.

 

 

 

 

 

융릉 홍살문 옆으로 절을 하듯 깊게 구부러진 모습으로 서있는 느릅나무가 인상적이었다.

 

'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며

느릅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의 시처럼 우리 산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 및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만남에도 등장하는 역사 속의 우리 나무이다.

껍질을 빻으면 '느릅느릅'해 진다고 하여 느릅나무가 되었으며, 배고픔을 달래주기도 했단다.

 

 

 

 

융릉을 돌아 나와 이번엔 건릉으로 가는 길.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걷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비가 와서 더욱 운치가 있는 왕릉 산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날이 좋을 때 융건릉을 (넓게 걸을 수 있는 숲 산책로가 잘 되어 있다) 산책하러 와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융건릉 바로 맞은편에 있는 케냐커피전문 카페의 커피맛도 훌륭하였으므로.

수원광명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그리 멀지 않아 접근성도 좋다.

 

 

건릉은 조선 제22대 정조(1752~1800)와 효의황후 김씨의 능이다.

정조는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당파와 신분의 구분 없이 능력과 학문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학문연구 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수원 화성을 건축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건릉
건릉은 정조와 효의황후의 합장능이다.

 

 

융건릉 입구에는 재실이 있다.

재실은 제례를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참봉(종9품) 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 돌보았다.

주요 시설로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업무를 주관하는 진사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머리빗 모양의 잎이 非자 모양으로 뻗고 주홍빛 열매가 아름다워 정원수로 잘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