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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 슈테판 셰퍼 본문

공연,영화,서적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 슈테판 셰퍼

다보등 2025. 10. 17. 21:14

 

 

작가 슈테판 셰퍼는 1974년 독일에서 태어나 40년간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테니스 선수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진로를 전향, 최근까지 미디어 업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자리했다. 잡지 <쉬너 보넨>, <브리기테>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잡지사 그루너+야르의 대표로 일했다.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나지 않아 사임을 발표한 그는 은퇴 후 첫 소설인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을 집필했다. 2024년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화로 제작되어 2026년 독일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사업가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시골 별장에서 혼자 조용한 주말을 보낼 생각이었다. 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폰과 끝없는 할 일 목록에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방향을 잘못 꺾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스스로의 영혼을 들여다볼 틈이 주어지지 않아 지친  '내' 앞에 호수에서 알몸으로 수영을 하던 카를이 나타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며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어느 특별한 주말에 관한 이야기다. 
일면식도 없는 카를이 역시 일면식도 없는 '나'를 그의 집으로 초대하였고 거절할 이유가 천 가지는 있었지만 그의 초대에 응한다. 커피 세 잔을 마시는 동안 스물여덟 번쯤 서로 질문이 오가고 그들 두 사람의 삶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을 만큼 서로 달랐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 주말에 두 사람의 만남이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또 얼마나 특별한 이야기들인지 술술 읽혔다. 

 

 


책 속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5시 12분,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깼다. 몇 달 전부터 그랬다. 무슨 요일이든, 몇 시에 잠자리에 들었든, 어떤 수면용 차를 마셨던 한결같았다.  6월의 그 토요일에도 똑같았다. 나는 혼자 시골로 내려갔다. /7

여름의 어느 토요일, 나는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친절하게 거절하기에 합당한 이유가 천 가지는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써야 하는 이메일, 장을 봐야 한다는 것, 이 남자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 하지만 내 대답은 달랐다. 내 입에서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네, 좋습니다. 주소를 주세요. 얼른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갈게요." /17
 
그는 이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힘차게 땅을 파헤친 다음, 돌멩이만 한 길쭉한 타원형 감자에서 고고학자처럼 흙과 먼지를 털어 내고 팔을 공중으로 뻗었다. "소개할게요. 올해 첫 조생종 감자예요!" 그는 며칠 만에 마침내 금 한 조각을 찾아낸 광부처럼 먼지 묻은 발견물을 나에게 건넸다. /45

카를이 땅에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반면, 나는 마치 흙에서 막 뽑힌 것처럼 느낄 때가 잦았다. /47

 

 

 

"당신의 제일 소중한 꿈은 뭐예요?"

놀라운 것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충격적이었다.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59


나는 어느샌가 꿈을 버렸고 낮잠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멍한 마음으로 카를을 따라 부엌에서 나왔다.
음식보다는 우리가 나눈 대화를 소화하느라 바빴다./60

발밑에서 숲길이 느껴지고 꿀 냄새가 풍겨 온 뒤에야 오늘 하루의 크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우리가 나눈 대화가 너무나 특별하고 감동적이었기에 하루 종일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97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다림질해 베개 위에 올려 둔 잠옷처럼 포근한 하루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오래 기다린 여름비가 내리자 공기는 신선한 흙냄새를 풍겼다. 산책 중 통증을 겪어 깊어졌던 카를의 주름도 다시 펴졌다. 전통적인 의미, 그리고 가장 좋은 의미에서 말하는 일요일의 평화였다./160

카를이 호숫가에서 아주 생생하게 알려준 것처럼 나에게는 스물다섯  번의 여름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더는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163

지난 이틀은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용기는 언제나 도움이 되지만 불안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를이 그  사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163

 

카를의 밭을 지나갈 때, 바람이 앞이 아니라 뒤에서 불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풍이었다./165 

 

 

완전히 낯선 길을 걸어본 때가 언제였더라. 우리는 끝없이 연결되고 목적지까지 이르는 최단 거리를 찾아내지만, 막상 삶이 어디로 가는지 자꾸 잊어버린다. 고단한 세상에 무너진 우리의 마음을 말없이 다정하게 일으켜 세우는 소소한 위로의 기록.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내 안에 '카를'의 느린 삶을 잠시 빌려와도 좋을 듯싶다. 

 

나에게 남은 계절은 몇 번일까?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은 내 남은 인생이 무척이나 애틋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남은 계절을 살뜰하게 맞이하고 보내야겠다. 뭐든 자꾸 미루지 말자.

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내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 사랑 한다는 말을 한번이라도 더 하자.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마음을 나누자.

현재를 즐겨야 미래가 활기차진다.

예쁘지 않아도 매력적인 사람이 좋다.

미래를 생각한다.

나이 들수록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