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이옥선 산문 '즐거운 어른' 본문
작가 이옥선 님은 1948년생으로 진주에서 태어나 현재 부산(해운대)에서 거주 중이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동네 언니 이야기 같기도 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읽다 보면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성인이 되어 독립한 자식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비로소 혼자가 된 작가가 자유의 몸이 된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며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풀어 놓은 글이다. 자유로이 지내는 시간을 가지는 작가의 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 얼라리어! 글을 쓰다 보니 내 안에 이렇게 할 말이 많았나 싶게 거의 일주일에 한 편씩 쓰는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
글을 쓰면서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또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을 대변하는 글들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그냥 보통의 주부 노릇을 오랫동안 해온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 말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 작가의 말 중..

● 골든에이지를 지나며 ㅡ 다행히 아직 크게 아픈 곳은 없다. 친구들이 말하기를, 메이커 있는 병만 없으면 아직 괜찮단다. 노화에서 오는 여러 징조들이 있지만 아직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소소한 불편 정도는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에 의해서 상쇄된다.
(......) 지금 내 인생은 그야말로 골든에이지라고 할 수 있으며 나는 지금 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다.

●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 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섞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 엄마가 되면 비겁해진다 ㅡ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 너 아무도 안 쳐다봐! ㅡ 우리 세대는 아무래도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옷을 입고 밖에 나갈 때도 남의 눈에 튀지나 않을지 신경을 쓰는데, (......)
친구들이 입을 모아 "너 아무도 안 쳐다봐. 괜찮아 그냥 입어." 이렇게 대답한다. 70대 후반으로 가는 할머니가 무슨 옷을 입었기로서니 누가 그렇게 관심을 가질 것이며 쳐다본들 어쩔 건데, 느는 것은 배짱이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잘 안 입던 원색 옷도 입고 입술 색깔도 빨갛게 발라보기도 한다. 아무도 안 쳐다보면 또한 자유롭다.

● 나 같이 시간이 넉넉하고 딱히 할 일이 없는 노인네는 목욕탕 가서 씻고 약간의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개운해진다.
김 옥선 님은 (한꺼번에 한 달치의 목욕값을 내고 매일 가는) 달목욕이 일상 중 하나이다.
목욕탕은 나에게 일종의 노인정이며 두세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다른 매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게 해 준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고 사람들 안에서 사는 이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 내 꿈은 고독사 ㅡ 저는 바람이 있다면 심근경색으로 고독사하기를 바랍니다. 죽는 순간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119에 실려 병원 갑니다. 그러면 중환자실에서 며칠 보내다가 겨우 회복되어도 결국은 요양병원행입니다. 그러니 죽는 순간에 들키지 않는 게 최곱니다. 이것이 여기 오는 젊은 사람의 시각이 아닌 죽어도 아깝지 않을 나이인 제가 생각한 마지막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집에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 여자라면 의리 ㅡ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모든 면에서 무심해지는 것 같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빼고는 일상생활에서 여자보다 잘하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오죽했으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남자가 늙으면 두부 반 모보다 쓸데가 없다." 했을까.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언제나 대우받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이고, 늙어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자기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도 끝에는 다툼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여자들의 모임에는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있고, 서로 돌보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어가기에 나이 든 지금은 여자들의 모임이 훨씬 더 좋다. 의리를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유능해야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면에서도 여자들이 유능하다. 알고 보면 의리라면 여자인 것이다.

맵싸한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할머니.
따뜻한 할머니는 품어주지만, 까칠한 할머니는 해방시킨다.
이 책은 전주에 사는 작가와 연배가 같은 A언니가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며 추천한 거다.
시간 나면 보고 아니면 말고 하면서. 이 책이 딱 본인 이야기 같아서 더 흥미롭게 읽었단다.
마침 도서관 서가에 있길래 뽑아 들고 도서관에서 절반쯤 읽고, 집에서 나머지를 읽었다.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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